조선총독부 건물이란?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은 대한제국시대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조선총독부의 본부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1910년 일본에 의한 대한제국의 병합 이후,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총독부 본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물은 동양식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규모가 크고 외관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외관만이 건물의 전부는 아니겠죠.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한국인들에게 고통과 악몽을 안겨줬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압제, 강제동원, 인권침해 등의 역사적 사실로 인해, 이 건물은 한국인들에게는 침략과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 역사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 한국의 독립을 상징하는 건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1995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한국인들이 받은 고통과 억압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철거 결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철거 결정 이후, 이 건물을 보존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철거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1995년 11월 11일, 철거 반대 시위가 점점 격화되면서, 미국 대사관과 청와대 부속 건물 등도 같이 불태워지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후, 철거 반대 시위는 중단되었으나, 1996년 4월 28일 새벽, 철거 준비가 끝난 후에 철거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철거 반대 시위 참가자들과 철거작업자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철거 작업 차량들이 불태워지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1996년 5월 8일 새벽에는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이 건물이 부서지면서, 국가적인 사유지도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건물의 사적·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기 위한 운동이 계속되어 왔으며, 현재는 그 자리에 경복궁과 청와대를 잇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반응
1995년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 결정 이후, 철거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일부 일본인들은 서울로 방문하여 철거 반대 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들은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며, 이 건물을 보존하고자 하는 시민들과 함께 철거 반대 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철거 결정과 철거 작업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의 보존 여부에 대한 결정은 대한민국 정부의 권한이며, 일본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축적 가치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은 일본식 건축 양식과 서양식 건축 양식을 결합한 혼합 양식의 건물입니다.
외관에서는 일본식 건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식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계단식 지붕과 층간마다 있는 베란다(발코니) 등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서양식 건축의 영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주로 건물 내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건물 내부의 회랑식 구조와 건축 재료로 사용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 등이 서양식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잔해인 첨탑
1995년에 서울 조선 총독부 건물에서 분리된 첨탑은 이후에 몇 차례의 이동과 보관 장소 변경을 거쳐 2010년부터 첨탑은 현재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대로 357-11에 위치한 천안시립박물관 대관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실제 장소에 가보시면 해가 지는 서쪽에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는데 이는 일부러 지는 해의 모습으로 전시한 것이라고 합니다.